K리그 구단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구단, 국군체육부대 구단, 그리고 지자체(시 또는 도)가 운영하는 통칭 ‘시민 구단’이다. 2003년 대구광역시가 월드컵경기장 사후 활용 방안의 하나로 대구 FC를 창단했다. K리그 1호 시민 구단이었다. 이후 전국 지자체가 앞다투어 시민 구단을 차렸다. 2025시즌 K리그 1·2에 참가하는 26개 구단 중 시민 구단이 16곳에 달한다.
K리그 시민 구단은 유럽의 선행 사례들을 참고한다. 스페인의 강자 FC 바르셀로나는 14만 회원(소시오)이 모인 비영리 스포츠 조합이다. 직접선거로 뽑힌 회장과 집행부가 4년 임기로 구단 운영을 책임진다.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등도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K리그의 경우는 포장지만 ‘시민’일 뿐, 알맹이는 지자체가 만들고 돌리는 공영 구단에 가깝다. 지자체 예산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이 기본 재원이다. 부족한 부분은 지자체가 유관기관이나 시금고의 팔을 비틀어 따낸 스폰서십 계약으로 메운다. 말이 좋아 시민 구단이지 실제 운영되는 모습은 ‘지자체 구단’ 또는 ‘공영 구단’이라는 명칭이 합당해 보인다.
초창기 지자체 구단들은 살림살이가 퍽퍽했다.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K리그에는 이제 지자체 구단이 기업 구단보다 많다. 최근 들어 규모까지 기업 구단을 능가하는 ‘빅 지자체 구단’도 출현하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2024년 예산은 258억원에 달했다. 선수단 인건비 규모는 126억원으로 1부 12개 구단 중에서 다섯 번째로 컸다. 공격수 듀오인 무고사와 제르소의 연봉도 각각 15억4000만원, 14억4000만원으로 K리그 외국인 연봉 3, 4위에 해당했다. 지자체 16개 구단의 예산 합계는 연간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부 세금이다. 지자체 구단은 이제 가난하거나 서럽지 않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데도 지자체 구단의 구시대적 작태가 여전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구단주로 있다 보니 지역 축구계 표심과 결탁한 정치적 외압이 끊이지 않는다. 프로축구단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지자체 구단에서는 정치권에서 꽂아 넣는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관행은 구단의 장기적 성장을 저해하고 경영 효율성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는다.
최근 K리그2의 안산 그리너스에서 이런 문제가 또 불거졌다. 2023년 임종헌 당시 안산 감독은 선수 선발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구단주인 이민근 안산시장은 임 감독을 해고했고, 구단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2024년 초 안익수 전 FC 서울 감독을 신임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안 대표는 부임 초기부터 구단 내부에 자리 잡은 배타적 분위기에 부딪혀 애를 먹었다. 기존 일부 유소년 지도자들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출했다고 한다. 시즌 도중 대표이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지역 여론이 일었고, 결국 11월 안 대표는 사표를 제출했다.
이민근 시장은 사태를 수습하려고 김정택 전 안산시의원을 단장직에 앉혔다. 하지만 구단 서포터스는 김 단장에 대해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후보 단일화를 거쳐 현 시장의 선거 유세를 지원했던 인물”인 점을 지적한다. 김 단장은 안산시 축구계 인맥의 중심인 원곡중학교 총동문회장, 안산시축구협회장 등을 두루 거쳤다. 부임과 동시에 파열음이 났다. 2025년 계약이 확정되어 메디컬테스트까지 마친 선수 6명의 계약이 취소된 것이다. 한국에이전트협회와 구단 서포터스는 ‘프로스포츠의 윤리 및 가치 훼손’ ‘구단 사유화’라며 해당 결정을 비판했다.
구단 측은 “30명의 선수가 확정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신임 단장이 오자마자 (선수들을) 바꿔 넣으려고 시도했다는 것 또한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진실 공방은 구단이 논란이 됐던 선수 6명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 이 선수들이 팀 내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남는다.
“구단을 선거 유세 조직 정도로 본다”
지자체 구단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와 지자체 구단의 역학 관계를 지적한다. “지자체장들은 차기 지방선거(2026년)를 앞두고 2년 전부터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지역에서 입김이 센 인사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 그런 일에 지자체 구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지자체 구단을 자신의 선거를 돕는 유세 조직 정도로 본다. 그 안에 축구는 없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잡음이 요란하다. 2024시즌 인천은 1부 리그 최하위를 기록해 강등됐다. 전달수 대표이사가 물러났고, 유정복 인천시장이 “백년 구단 도약”을 외치며 비상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심찬구 사내이사가 임시 대표이사직을 수행했고, 구단 주변에서는 극우 성향 정치평론가로 알려진 장원재 전 숭실대 교수가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삐걱거리던 ‘혁신’ 활동은 결국 감독 교체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2024시즌 후반기를 이끈 최영근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기 전에 윤정환 감독의 선임을 발표한 것이다. 서류상으로 한 구단에 감독 두 명이 된 셈이다. 선임 3개월 만에 쫓겨난 최영근 감독은 “내가 보험용 감독인가?”라면서 불쾌감을 나타냈다. 논란이 커지자 심찬구 임시 대표는 윤정환 감독 선임이 발표된 지 이틀 만에 사임했고, 장원재 대표이사 카드도 없던 일이 됐다. 뒤이어 조건도 전 인천 대표가 12년 만에 복귀했다. 그는 유정복 시장의 정치적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인천은 오래전부터 지역 축구계의 입김이 세다. 구단 내부 회의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지역지 쪽과 공유된다. 지자체장이 4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장기적 비전 수립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구단 관련 의사결정권자들이 특정 정치 성향을 공유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지자체 구단의 정치 외풍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결국 K리그의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나서야 한다.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회원사를 보호하는 독립 감시기구를 상설 운영하거나 구단 라이선스의 기준 요건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지자체 구단은 리그 활성화를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구태에 갇혀 리그 발전에 걸림돌로 전락했다. 연맹은 지자체 구단들을 지금 상태로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