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강호 토트넘과의 FA컵 3라운드 대결이 5부 리그 탬워스 FC에 아름답고, 한편으론 씁쓸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감동적인 도전으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던 경기가 도박과 연계된 인종차별 문제로 퇴색됐다.
탬워스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격수 크리스토퍼 레는 경기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받은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놀라운 하루를 보낸 후 인스타그램을 열었을 때 이런 메시지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12일 펼쳐진 이 경기는 그동안 영국 축구가 꿈꿔온 ‘아마추어의 도전’을 상징하는 무대였다. 푸드트럭 운전사, 건물 측량사, 여행가 등 각자의 직업을 가진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최고 구단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가는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전날 아들을 얻은 골키퍼 자스 싱의 선방쇼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후반 교체 출전한 레를 향한 혐오 메시지는 이 모든 순수한 도전 정신을 무색게 했다.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가 이기거나 내가 골을 넣어서 그가 도박에서 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스포츠도박과 인종차별 발언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레의 아버지는 1997~1998시즌 아스널의 프리미어리그·FA컵 2연패를 이끈 크리스토퍼 레(49)다. 라이베리아 대표팀에서 36경기를 뛴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발자국을 잇고자 했던 아들은 FA컵 도전 도중 혐오 표현으로 상처를 입었다.
“부카요 사카, 제이든 산초처럼 스타 선수들이 순간의 실수로 사랑받다가 미움받게 되는 것이 우리의 피부색 때문이라는 게 슬프다”는 레의 발언은 영국 축구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했다. 지난달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카일 워커도 챔피언스리그 경기 직후 인종차별 메시지에 시달렸다.
스태퍼드셔 경찰은 즉각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며, 탬워스와 협력해 피해자 지원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혐오 표현 모니터링 강화와 도박 연계 폭력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