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컵 탬워스와 연장 끝 3대0 승
1871년 창설한 FA컵은 프로부터 아마추어까지 잉글랜드축구협회(FA)에 등록된 모든 팀이 참가하는 유서 깊은 대회다. 2024-2025시즌엔 1~10부 리그에 속한 745팀이 출전했다. 그중 1~2라운드를 뚫고 64강에 오른 탬워스FC는 잉글랜드 중부 탬워스 지역을 연고로 한 5부 리그 내셔널 리그 소속 팀. 1라운드에서 3부 리그 허더즈필드 타운을 1대0으로 물리친 탬워스는 2라운드에선 역시 3부 리그에 속한 버턴 앨비언을 승부차기 끝에 눌렀다. 64강에 오른 팀 중 탬워스와 대거넘이 가장 낮은 리그(5부)에 속한 팀이었다.
지난해 12월 FA컵 64강 추첨 결과 탬워스가 홈구장 더 램 그라운드에서 프리미어 리그(EPL) 토트넘과 맞붙게 되자 8만여 탬워스 시민은 환호했다. TV에서만 보던 EPL 스타들이 탬워스를 방문하면서 FA컵 경기가 열린 12일(현지 시각)은 지역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토트넘 선수들이 구단 버스에서 내려서 스타디움으로 걸어 들어갈 때까지 탬워스 팬들은 휴대전화로 그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담으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가장 인기가 높은 선수는 캡틴 손흥민. 곳곳에서 “소니!”라고 외치며 수퍼 스타의 등장을 반겼다.
이날 승부는 연장 끝 토트넘의 3대0 승리. 경기가 끝나자 탬워스 어린이 팬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왔고, 경기장 안전 요원은 이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손가락으로 손흥민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비록 어린이 팬들은 토트넘 구단 관계자에게 막혀 사인을 받진 못했지만 손흥민을 옆에서 봤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지퍼 판매업자나 벽돌공, 재즈 가수 등으로 이뤄진 탬워스가 주급 19만파운드(약 3억4000만원)를 받는 손흥민을 포함해 선수 총합 6억6700만파운드(약 1조1900억원) 가치를 지닌 토트넘과 맞섰다”고 전했다. 탬워스 선수들의 주급은 대략 150파운드(약 27만원)에서 400파운드(약 70만원) 사이. 6부에 있다 올 시즌 5부로 올라온 터라 내셔널 리그에서도 급여가 적은 편이다. 축구만 해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 본업이 따로 있는 파트타임 선수들이 대부분으로, 이날 긴 스로인으로 토트넘을 괴롭힌 미드필더 톰 통크스는 샌드위치 판매 사업을 하고 있고, 경기에 앞서 골네트에 구멍이 난 곳이 발견돼 직접 고쳐 보려고 했던 골키퍼 자스 싱은 건물 감정사다. 결국 옷집 점원으로 일하는 베크라이 에노루가 동료 목말을 타고 테이프를 이용해 그물을 크로스바와 연결하며 경기는 열릴 수 있었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약 6만3000명을 수용하는 것과 달리 이날 64강전이 펼쳐진 더 램 그라운드는 4000명이 들어가는 작은 구장으로, EPL에선 볼 수 없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다. 앤디 피크스 탬워스 감독은 한 대학에서 장애 학생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보며 감독 일을 병행하다 이번 토트넘과의 대결이 성사되면서 정규 계약을 체결했다.
이날 안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5부 리그 팀을 맞아 손흥민과 데얀 쿨루세브스키를 뺐지만, 제임스 매디슨과 파페 사르, 페드로 포로 등 주전 멤버를 대거 기용하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부 리그 팀과 대결이라 출전이 기대됐던 19세 신예 양민혁은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대신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18세 유망주 마이키 무어를 선발로 기용했다.
예상보다 5부 리거들의 저항은 거셌다. 토트넘은 상대 육탄 수비와 싱 골키퍼 선방에 고전하며 결국 0-0으로 연장에 돌입했다. 하지만 손흥민과 쿨루세브스키가 교체돼 나오자 흐름은 바뀌었다. 비시즌 한국 인조잔디 구장에서 곧잘 풋살을 즐기는 손흥민은 스피드를 앞세워 탬워스 수비진을 파고들었다.
연장 전반 11분 손흥민이 중원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포로가 페널티 지역 안으로 찔러줬고, 혼전 중에 공이 탬워스 미드필더 네이선 치쿠나의 발을 맞고 골라인을 넘으며 토트넘이 기다리던 첫 골을 얻었다. 연장 후반 2분엔 손흥민의 패스에 이은 쿨루세브스키의 추가 골이 터졌다. 손흥민의 올 시즌 7번째 도움. 그는 이번 시즌 EPL 5골 6도움을 포함해 14번째 공격 포인트(7골 7도움)을 올렸다. 브레넌 존슨이 연장 후반 13분 3대0 승리를 완성하는 쐐기골을 터뜨렸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멋진 경기를 펼쳐준 탬워스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토트넘은 내달 EPL 팀 애스턴 빌라와 FA컵 32강전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