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박지성의 캡틴 지위를 박탈했던 영국의 노장 감독이 이번엔 손흥민(33, 토트넘)의 캡틴직을 박탈해 19세 어린 선수에게 줘야 한다는 황당 주장을 펼쳤다.
영국 매체 더 선이 지난 16일(한국시간) 해리 레드냅(77) 전 토트넘 감독과 진행한 인터뷰서 손흥민의 캡틴 완장을 뺏어 아치 그레이(19)에게 줘야 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국내 축구팬들에게 큰 논란을 빚고 있다.
레드냅 감독은 더 선과 인터뷰서 “나는 손흥민을 사랑하지만, 그가 주장으로서 내게 인상을 줬던 적은 없다”라고 평가하며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용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아치 그레이에게 주장을 넘겨준다면 아마 10년은 그것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아치 그레이에게 주장직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현재는 축구 감독으로 일하고 있지 않다. 레드냅 전 감독은 2017년 9월 버밍엄 시티 지휘봉을 잡아 5개월만에 물러난 이후 현재까지는 축구 칼럼니스트와 방송인 등으로 활약 중이다. 다만, 워낙 오랜 기간 영국 축구계에 재직한 만큼 나름의 원로로 인정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축구인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뻥 축구’의 롱볼과 거친 몸싸움 등을 기조로 하는 효율적인 축구를 최우선하며 종종 지나치게 자국 선수들을 옹호하고 해외 선수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잘못된 발언을 한 선수들을 감싸는 등 마초적인 행보로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손흥민의 주장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발언도 ‘용감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변화를 포장하지만 사실 과거 이력까지 떠올리면 문제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과거에도 레드냅 감독은 한 차례 한국 축구 레전드의 캡틴 지위를 박탈한 적이 있다. 바로 2012년 6월 성적 부진으로 토트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2012-13 시즌 도중 퀸즈파크레인저스의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다.
당시 레드냅 감독은 주장 교체를 선언하면서 “힐은 팀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한 전투를 치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자세”라며 영국 출신의 수비수를 주장으로 선임한 바 있다.
레드냅 감독은 과거에도 감독이었던 당시에나 은퇴 이후 축구 방송인으로 재직하면서도 선수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감독 커리어 재직 당시에는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면 곧바로 대체 선수를 영입하는 식의 행보를 보였다. 자신의 기준에서 충족되지 않는 선수들은 아예 출전조차 시키지 않는 등 ‘고집이 강한 지도자’로 꼽혔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박지성의 주장 박탈 사건 외에도 QPR 팀내의 또 한 명의 코리안리거였던 윤석영이 레드냅 감독 재직 이후에도 별다른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임대 신세를 전전했던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런 사례 외에도 레드냅 감독은 ‘인종 차별 발언’으로 A매치 출전 징계를 받은 존 테리에게 “다시 주장 완장을 달아주겠다”고 옹호하고 그를 이후 첼시 감독으로 추천하는 등 이른바 전형적인 마초형 스타일의 선수들을 선호하는 태도를 오랫동안 견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팀에서 뛴 지 1시즌도 채 되지 않고, 프로 커리어에서 아직 보여준 것도 없는 선수에게 10년째 팀에서 헌신하고 있는 선수의 캡틴 지위를 박탈해 줘야 한다는 것은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그레이 개인의 리더십이 드러난 적도 없을 뿐더러 그가 손흥민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은 현재로선 그저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레드냅 감독의 행보를 지켜본 이라면 사실 전통적인 잉글랜드의 거친 축구를 선호하고 백인 중심의 그들만의 리더십을 오랜 기간 지지했던 인종차별적인 그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설 수 있다.
실제 해리 레드냅의 아들로 역시 PL에서 활약했고 현재는 칼럼니스트와 방송인으로 있는 제이미 레드냅 역시 아버지와 동일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정작 제이미 레드냅 본인은 현역 시절 언론들로부터 사생활 등을 지적 당했던 문제아였다. 리버풀 커리어 말기에 주장직을 맡기도 했지만 곧바로 스티븐 제라드에 밀려 토트넘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토트넘에서도 주전으로 밀리자 ‘아버지 찬스’를 써서 해리 레드냅이 지휘하던 사우스햄프턴으로 다시 이적한 이후 그 팀에서 은퇴하기도 했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국의 부자 축구인들이 연달아서 손흥민에게 폭언에 가까운 지적들을 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인 제이미 레드냅 역시 과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뜬금없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 문화를 반대한다는 서명을 내는 등 오히려 한국을 폄훼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적이 있는 인물이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부진을 틈 타 그들이 흔들려는 리더십의 실체도 실제로는 평소 갖고 있는 역겨운 편견들에 기반한 것이 아닌 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