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프리미어리그(PL)의 벽은 생각보다도 높은 모양새다. 양민혁(19)이 토트넘 홋스퍼 1군에 데뷔하는 대신 연령별 유스팀에서 적응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제기됐다.
토트넘 내부 사정에 능통한 폴 오키프는 16일(한국시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문답을 진행했다. 그는 한 팬에게 "양민혁이 이제 막 영국에 왔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계속 뛰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순전히 전략적 이유인가 아니면 부상 같은 다른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오키프는 '적응 시간'을 언급했다. 그는 "순전히 양민혁을 영국과 영국 축구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라고 답하며 다른 걱정을 일축했다.
한 팬은 "그렇다면 양민혁이 21세 이하(U-21) 팀에서 뛰게 될 것이란 의미인가?"라고 재차 물었다. 오키프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그는 "좋은 질문이다. 토트넘은 아마 그 방안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며 양민혁이 토트넘 1군 무대를 밟기 전에 아카데미 선수들과 함께 뛰며 적응기를 가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엔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이 밝힌 양민혁 활용 방안과 비슷한 내용이다. 그는 이달 초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맞대결을 앞두고 양민혁 기용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양민혁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는 "양민혁은 매우 어리고, 여기서 맞닥뜨리게 될 수준과는 매우 거리가 먼 지구 반대편에서 왔다. 그냥 그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이 있기 때문에 클럽 안팎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우리는 양민혁이 빠르게 적응하도록 도우려 한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다. 그냥 그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지켜 보자"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후로 양민혁을 한 번도 출전시키지 않았다. 양민혁은 리그 경기에서는 모두 명단 제외됐고, 리버풀과 카라바오컵 준결승 1차전에선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끝까지 벤치를 지켰다. 결승 진출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던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양민혁이 5부리그 탬워스와 FA컵 경기에서도 명단 제외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시 영국 현지에서도 양민혁이 토트넘 데뷔전을 치를 것이란 예상이 많았기 때문.
'풋볼 런던'은 "양민혁이 이번 주말 토트넘에서 인사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1월 1일에 공식적으로 토트넘에 합류했으며 새로운 팀원들과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방식에 대해 알아가는 데 몇 주를 보냈다"라며 "양민혁은 리버풀전에서 1분도 뛰지 못했다. 탬워스전에서는 교체로든 선발로든 출전할 가능성이 꽤 높다고 봐야 한다"라고 전망했다.
토트넘 소식에 능통한 존 웬햄도 양민혁의 데뷔를 점쳤다. 그는 '토트넘 뉴스'를 통해 "마이키 무어와 양민혁 둘 다 리버풀을 상대로 출전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양민혁은 탐워스전에서 교체로 나올 것 같다"라며 "존슨에게 출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민혁이 선발로 나오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그는 출전할 것 같다. 이를 통해 스쿼드에 더 많은 옵션이 생기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토트넘 뉴스 역시 "토트넘 팬들은 양민혁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기뻐할 것"이라며 "탬워스와 경기는 현실적으로 예견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양민혁은 큰 압박이 없는 환경에서 데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주축 선수들을 대거 선발 기용했고, 양민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신 2007년생 마이키 무어가 선발 출격했고, 2005년생 센터백 알피 도링턴과 2007년생 미드필더 칼럼 올루세시, 2005년생 공격수 윌 랭크셔가 벤치에 앉았다. 연습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했던 양민혁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양민혁이 1군 선수들이 아닌 U-21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양민혁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손흥민과 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디 애슬레틱' 역시 양민혁의 아카데미행을 점친 바 있다. 매체는 지난달 말 "현재 양민혁은 새로운 나라에서 삶에 적응하며 영어 레슨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1군 스쿼드에서 포스테코글루의 폭넓은 옵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치 그레이나 루카스 베리발 같은 선수보다는 아카메디 선수들 수준에 더 가까울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2006년생 동갑내기인 그레이와 베리발은 양민혁과 달리 토트넘 1군에서 꾸준히 출격 중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활약한 그레이는 센터백으로 변신해 주전급으로 뛰고 있으며 베리발도 리그 14경기 출전을 포함해 많은 기회를 받고 있다. 벤치 명단에 포함되기도 어려운 양민혁과는 정반대의 입지다.
최악의 경우 양민혁은 이번 시즌 내내 데뷔하지 못할 수도 있다. 토트넘으로서는 FA컵과 리그컵, 프리미어리그 어느 하나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 리그컵에서는 이미 준결승 2차전을 앞두고 있고, 리그에서는 12위까지 처져 있다. 게다가 양민혁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도 미등록됐기 때문에 남은 리그 페이즈 두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
FA컵 대진도 좋지 않다. 토트넘은 FA컵 32강에서 하위리그 팀이 아닌 프리미어리그 경쟁팀 아스톤 빌라라는 점을 만나게 됐다. 5부 팀을 상대로도 양민혁을 기용하지 않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빌라전에서 마음을 바꿀 확률은 희박하다.
그러나 너무 빨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양민혁은 그레이나 베리발과 달리 유럽 경험도 없는 데다가 2024시즌을 치른 뒤 숨 돌릴 틈도 없었다. 그는 강원FC에서 프로 데뷔 시즌부터 K리그1 38경기에 모두 출전했기에 당장 실전을 소화하기보다는 휴식과 회복이 필요한 상태다. 포스테글루 감독의 말대로 천천히 적응하는 게 길게 봤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등번호 18번을 받은 점도 기대감을 더한다. 양민혁은 지난달 구단 요청에 따라 토트넘에 조기 합류했고, 다른 유스 선수들과 달리 주로 1군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18번을 배정받았다. 특히 토트넘의 18번은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 해리 케인이 어릴 적 사용하던 번호다. 팀 상황이 나아지고 양민혁이 조금씩 적응한다면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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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토트넘 소셜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