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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여도 잔디 위에선 선수가 ‘본캐’
‘부캐’여도 잔디 위에선 선수가 ‘본캐’
botv
2025-01-13 21:18


여행가·건물 측량사 등 활약 속
연장전까지 팽팽한 경기 이어가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제 몫 다한 우리가 자랑스럽다”


토트넘과 탬워스의 2024~2025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라운드 경기가 열린 12일 영국 탬워스의 더 램 그라운드. 5부 리그에 해당하는 내셔널리그 소속 탬워스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강호 토트넘을 안방으로 불러들이면서 축제 분위기였다. 5000명도 채 들어가지 않는 홈 구장은 일찌감치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각자 직업을 따로 갖고 있는 선수들도 생전 처음으로 전국 중계 카메라 앞에서 EPL 최고 클럽에서 뛰는 스타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최선을 다했다. 1922년 창단한 탬워스는 사실상 아마추어팀임에도 전·후반을 0-0으로 맞서며 토트넘을 괴롭혔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자책골을 내준 뒤 연이어 실점하며 0-3으로 졌다.

5부 리그 팀을 상대로 자존심을 구긴 토트넘이지만, 탬워스 선수들에겐 졌음에도 기적 같은 경기였다. 영국 ‘BBC’는 “연장 끝에 토트넘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사적인 대회에 걸맞은 스토리로 포장된 경기”라고 평가했다.


여행가인 센터백 헤이든 할리스는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자신으로 향하는 백패스 때 한꺼번에 달려든 3명의 공격수 압박을 한 번의 턴으로 모두 따돌리는 개인기로 화제를 모았다. 할리스는 경기 뒤 “(토트넘)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여기로 데려올 만큼 충분했다’고 말했다”며 행복해했다.

주중에 푸드트럭을 운전하는 토미 통크스는 길게 던지는 스로인으로 유명하다. 이날 경기에서도 토트넘 수비진을 몇 차례 위협했다. 통크스는 “내 경력의 황혼기에 있다. 이런 밤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FA컵은 저와 팀에 정말 특별한 순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본업이 ‘건물 측량사’인 골키퍼 자스 싱에겐 더욱 특별했다. 전날 아내가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에 나선 싱은 이날 제임스 매디슨과 베르너의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았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 “어제 아빠가 됐는데 정말 행복하다. 아내가 아직 병원에 있는데 제가 오늘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며 “토트넘을 상대로 우리가 연장까지 경기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했다. 토트넘이 경기 후반부터 주전급 선수들을 투입한 순간을 떠올린 싱은 “우리는 모여서 ‘이제 시작이야’라며 웃었다”고 이야기했다.

탬워스의 앤디 피크스 감독은 프로팀 사령탑으로 정확히 3일간 일했다. 대학의 지원 근무자로 일하는 피크스 감독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팀과 풀타임 계약을 맺고, 이날 경기를 준비했다. 피크스 감독은 “내일부터는 우리 모두 자신의 일로 돌아가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교대로 일하면서도 임무를 해냈다. 우리 선수들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말 훌륭했고, 정말 자랑스럽다”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학 강사로 일하는 톰 맥글린치는 “더 높은 곳에 올라서지 못한 건 아쉽지만 놀라운 하루를 보냈다”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