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문제는 겉보기에 관리 주체의 노력으로 해소될 것 같지만, 리그 일정과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의 아산정책연구원 대강당에서 'K리그 그라운드 개선방안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번 심포지엄은 여름철 이상고온, 장마 등 K리그 경기장 잔디 피해에 따른 그라운드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심상렬 교수가 진행을 맡고 울산시설공단 김재후 차장, 천안도시공사 최규영 반장, 삼육대학교 환경디자인원예학과 김경남 교수, 이앤엘 잔디연구소 류주현 연구소장 등 잔디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패널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각각 '문수축구전용경기장 현 실태와 향후 잔디관리 방안', '천안종합운동장 잔디 관리 현황 및 관리자 처우 개선', '국내 경기장 토양 환경과 잔디 품질', '해외 구장 사례를 통한 국내 잔디 관리의 전략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본 한국 축구 잔디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건 여름 휴식기의 필요성이었다. 현재 한국 축구경기장에서 대부분 사용 중인 켄터키블루그라스 품종은 여름 더위에 취약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춘추제로 진행되는 리그 특성상 여름에 경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잔디 회복을 위한 최소 기간인 2주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잔디가 지속적으로 상하는 데다 회복할 기간도 적으니 잔디 상태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간다.
패널로 나선 네 전문가와 진행을 맡은 심 교수 모두 여름에 치르는 경기 수를 줄임으로써 잔디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김 차장은 "여름 일정을 중단할 수는 없지만 경기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건 필요하다"라며 봄과 가을에 경기 수가 늘어나더라도 여름 휴식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헀다. 심 교수도 "7, 8월 경기를 제한해야만 지금보다 잔디 상태가 개선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라며 잔디와 선수 모두를 위해 전향적인 경기 수 제약 혹은 여름 휴식기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잔디 문제는 추춘제 전환과도 결부된다. 현재 도입을 검토 중인 난지형 잔디는 추춘제로 전환되면 큰 소용이 없어진다. 현재 논의되는 잔디 문제 대부분이 여름과 관련있음을 고려하면 추춘제 도입은 겨울철 잔디 관리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낳는다. 프리시즌에 잔디를 관리하는 것과 리그 진행 중에 잔디를 관리하는 건 천지차이다.
다만 현장에서 잔디를 직접 관리하는 이들은 추춘제 전환에 의문부호를 띄웠다. 최 반장은 "추춘제는 관중들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여름엔 논두렁 잔디가 돼서 다치고, 겨울엔 땅이 얼어서 다친다"라며 "기존 방식이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결론지었다. 심 교수 또한 "제주도를 제외하면 추춘제가 어려울 수도 있다"라며 추춘제 전환이 적어도 잔디 사용에 있어서는 무리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도 "추춘제에 대해 지금 말하기는 어렵다. 겨울에 경기를 하려면 자동지열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니면 계속 문제가 발생할 텐데, 자동지열 시스템은 결국 비용 문제"라며 추춘제 전환이 필연적으로 부담스러운 지출로 이어질 거라 말했다.
그밖에 하이브리드 잔디에 있어서도 문제는 돈이었다. 김 차장은 해외 리그와 K리그의 실질적인 규모 차이를 언급하면서 당장 다음 여름에 대한 논의부터 차근차근 장기적 대책으로 진전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여름 휴식기에 대한 논의를 선행한 다음 추춘제 전환과 잔디 관리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도 함의돼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