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을 칭찬했다고 알려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발언은 문맥 파악 없이 '가짜 9번(False 9)' 관련 언급만 담은 소셜미디어(SNS) 게시글이 나오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럼에도 과르디올라 감독 발언 속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을 선발 기용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23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리그 페이즈 7차전에서 파리생제르맹(PSG)이 맨체스터시티에 4-2로 역전승을 거뒀다. PSG는 승점 10점으로 전체 22위로 상승한 반면, 맨시티는 승점 8점에 머물며 25위로 추락했다. 올 시즌 UCL은 24위까지만 1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이날 이강인은 선발로 출장해 45분을 소화했다. 지난 리그 경기와 마찬가지로 가짜 9번으로서 활달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단순히 최전방에 머물지 않고 수시로 중원에 내려오거나 좌우 측면 공격을 보조하면서 브래들리 바르콜라나 데지레 두에가 자유롭게 뒷공간을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강인이 슈팅이나 드리블 돌파는 없지만 슈팅으로 이어지는 패스를 2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엔리케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강인을 우스만 뎀벨레로 교체했다. 패스와 연계에 보다 강점이 있는 이강인보다 드리블 돌파와 의외성에 특화된 뎀벨레가 득점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과적으로 뎀벨레는 0-2로 뒤지고 있을 때 중요한 추격골을 넣으며 엔리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고, 이 골을 시작으로 PSG는 4-2 대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경기 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가 PSG보다 전술적으로 아쉬웠음을 인정했다. 여기서 나온 발언이 가짜 9번 관련 언급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PSG가 더 나았다. 그들은 중원에 가짜 9번을 통해 수적 우위를 형성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은 이유"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특정 인물이 아니라 엔리케 감독이 들고 나온 전술에 대한 칭찬이었는데, '가짜 9번'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준 건 뎀벨레보다 이강인이기 때문에 역할을 잘 이행한 선수에 대한 칭찬으로 해석해도 무방한 문장이다.
문제는 해당 발언 직전 과르디올라 감독이 "우리가 0-2에서 1-2로 따라잡힐 때"라는 단서를 붙였다는 것. 과르디올라 감독은 "0-2에서 1-2가 될 때까지 우리는 전혀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방어에 성공하려면 공을 우리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뒤 가짜 9번으로 인한 수적 우위에 대해 언급한다. 실제로 맨시티는 0-2에서 1-2로 따라잡히는 약 1분 20초 동안 공을 소유한 적이 없다. 즉 첫 번째 실점 상황으로 대표되는 PSG의 전술이 맨시티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강인에 대한 칭찬으로 직해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과르디올라 감독의 발언에서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을 선발 기용한 이유가 드러난다. 이강인은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만큼 중원에서 플레이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전반 내내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대를 끌어내 뒷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경기 중 바르콜라가 이강인이 자리를 비운 중앙에 서있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엔리케 감독이 이강인을 뎀벨레로 바꾼 이유가 득점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뎀벨레는 이강인보다는 최전방에 머물려 노력했다. 그러나 뎀벨레가 후반 시작부터 곤살루 하무스가 투입될 때까지 약 15분 동안 가짜 9번으로 뛰지 않은 건 아니다. 뎀벨레는 중원에서 공을 잡을 때마다 전방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을 통해 맨시티 센터백들을 움직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뎀벨레 역시 가짜 9번의 움직임을 수행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직접적으로 이강인을 칭찬하지 않았어도, 엔리케 감독이 의도한 바를 언급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엔리케 감독은 이번 시즌 이강인을 상황에 따라 여러 포지션에 기용하고 있으며, 현지 매체의 오락가락하는 평가에도 이강인의 실력을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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