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상암, 조용운 기자] '차범근' 석자는 대한민국 축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이름이다. 축구를 하는 누구나 우러러보고 따른다. 위계 질서가 확고한 존재를 평생의 라이벌로 둔 이의 고통은 알 길이 없다.
선수 차두리에서 프로 사령탑으로 변모한 차두리 화성FC 감독은 직위가 달라져도 변함없이 아버지의 이름과 나란히 서야만 했다.
차 감독은 19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2 2025 개막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취재진을 만났다. 선수 시절 항상 에너지가 넘쳐 '긍정 로봇'이라 불렸던 특유의 유쾌함은 여전했다. 어떠한 질문에도 위트가 넘치는 달변으로 데뷔전을 앞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차 감독과 함께하는 화성은 그동안 K3리그를 누비다 이번 시즌부터 K리그2에 입성했다. 청소년 레벨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차 감독과 동계 시즌을 차분히 보낸 화성은 오는 23일 오후 2시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성남FC와 원정 경기를 통해 2부리그에 처음 노크한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차 감독은 FC서울에서 은퇴한 뒤 차분히 지도자 준비를 해왔다. 2016년 축구대표팀 전력분석관을 시작으로 A대표팀 코치와 서울 유스강화실장, 서울 산하 U-18 오산고 감독 등을 지냈다. 오산고를 이끌며 2021년 전국체육대회 우승을 달성해 머지않아 프로행을 예고하기도 했다.
차 감독은 "설레는 마음과 적당한 긴장감이 든다. 항상 머리로만 생각했던 축구가 프로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실현될지도 궁금하다"며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게 사실"이라고 웃었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로 나름의 축구 철학을 구축한 차 감독이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이름이 따라다닌다. 과거 현역에서 물러나면서 "축구를 하는 동안 내 기준은 차범근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며 "축구를 기준으로 차범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패한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인 바 있다.
지도자가 된 지금은 어떨까. 차 감독은 "아마 축구 일에 종사하는 동안 항상 비교가 될 것이다. 그 이름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항상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감독을 하기로 한 것도 내 선택이고, 내가 택한 것이기에 또 한 번의 도전이라고 본다. 아버지는 수원 삼성에서 우승을 하고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도 나가봤다. 나 역시 높은 목표에 도전하는 입장이 됐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아직은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차 감독은 "그동안 합숙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바빴다. 아버지와 길게 뭔가 이야기하는 시간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수 때는 아버지만큼의 선수가 못 됐다. 혹시 아나요. 감독으로 잘 준비하면 아버지를 조금은 뛰어넘지 않을까 하는 도전하는 마음이 생긴다"라고 각오도 다졌다.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포부를 품지 않는다. 현실을 냉정히 읽으려고 한다. "목표 같은 건 세우지 않았다"는 차 감독은 "체급 차이도 있어서 성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정한 건 없다. 당장 승격이나 플레이오프를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신 "나나 선수들이나 매 경기 선물을 받은 것과 같다.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절실함과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잡기 위한 행복감이 무기"라며 "화성 시민들이 우리 경기를 보고 재밌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겠다. 화성 축구는 재밌다는 이미지를 심는 게 올해 목표"라고 진지하게 바라봤다.
서울 시절 슈퍼매치로 얽히고설킨 수원에 대한 특별한 감정도 표했다. 앞서 수원만큼은 이기고 싶다던 인터뷰에 대해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며 "지도상으로 수원은 화성 바로 옆 동네다. 그리고 내가 서울 출신이라 기본적으로 파란색을 보면 약간 이기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우리가 가진 자원 안에서 뭔가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있다"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