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문로, 장하준 기자] 17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제주SK는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신문로의 축구회관에서 구자철의 현역 은퇴 기자회견과 동시에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진행했다. 2007년 제주에서 프로 데뷔한 구자철은 어린 나이에도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팀의 핵심으로 거듭났다. 곧바로 많은 주목을 받게 된 구자철은 한국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으며, 이어 2011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05 등을 거치며 해외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2022년 친정인 제주로 복귀하며 다시 국내 축구 팬들 앞에 섰다.
하지만 제주로 돌아온 뒤에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다. 잦은 부상으로 신음했고, 지난 시즌에는 3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에 구자철은 결국 축구화를 벗은 뒤, 제주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임명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자철은 "은퇴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홀가분하고 또 더 빨리 은퇴를 하고 또 세상에 나와서 한국 축구를 위해 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이렇게 와주셔서 더 무한한 책임감과 또 감사함을 느끼는 것 같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어 구자철은 "은퇴를 수년 전부터 생각해 왔다. 선수 시절 제가 받았던 사랑과 제가 누렸던 경험을 통해 한국 축구의 변화를 위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전했다. 구자철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상에 올라가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봤는데 그게 기억에 남는다"라고 설명했다.
과거 실패로 끝났던 국제축구연맹(FIFA)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구자철은 "그때 주장 완장을 착용했었는데,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국민들에게 항상 죄송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함께했던 기성용(FC서울), 이청용(울산HD)에게 고마움도 전했다. 구자철은 "은퇴를 한다 하니 두 친구가 아쉬워하고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친구들에게 너무너무 고맙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제 제주의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새 출발을 알리게 된 구자철은 "너무나 갖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정하는 것이 첫번째인 것 같다. 목표가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제2의 구자철을 꿈꾸는 유소년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다음은 구자철과 일문일답
은퇴 소감
은퇴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이렇게 준비를 하면서 홀가분하고 또 더 빨리 은퇴를 하고 또 세상에 나와서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이렇게 와주셔서 더 무한한 책임감과 또 감사함을 느끼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싶다. 너무 감사하다.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의 각오
우선 은퇴를 수년 전부터 생각을 해 왔었다. 준비를 해 왔었고 제가 단지 한국 축구를 위해서 축구화를 신고 뛰는 거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서 제가 받았던 사랑과 그다음에 제가 누렸던 경험들을 통해서 많은 도움이 되자고 생각했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무언가 변화를 갖는데 자기 역할들을 해내자라는 생각들이 확고했기 때문에 저 역시도 수년 동안 준비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 뛸 때 물론 시대가 빨리 변하고 세대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얼마만큼 빨리 융화가 되느냐가 중요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독일에 있을 때 물론 지도자 파트도 있지만 환경적인 파트나 경영 쪽이나 아니면 유소년 쪽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독일에서, 특히 아우크스부르크와 뮌헨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실질적으로 프론트에 구단에 들어가서 조금씩 배우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사실 축구를 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 때, 단상에 올라갈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 시상식에 올라가서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메달을 걸었을 때 그때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런던 올림픽 1년 전에 일본에 지면 축구화를 벗겠다고 했었는데
그때가 2011년 8월 11일 삿포로에서 열린 경기였다. 그 경기가 제가 독일에 유럽에 진출하고 아시아에서 펼쳐진 첫 번째 A매치였다. 당시 내가 비행기를 타고 볼프스부르크에서 하노버에 갔다가 하노버에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갔다가 인천 갔다가 인천에서 삿포르를 갔다가 경기 이틀 전에 도착해서 경기를 하는데 정말 그때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몸이 '이것을 어떻게 하지'라고 말한 적이 처음이었다. 결과가 0-3으로 졌는데 국민들, 그리고 대선배님들부터 이어온 한일전은 지면 안 된다라는 그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졌을 때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한 채 이제 다음 한일전 때 내가 지면 다시는 내가 진짜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경기를 들어갔었다. 내가 진다는 생각이 안 들고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 나는 오늘 기필코 승리를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고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할 때 제일 먼저 했던 말이 있다. 1년 전에 0-3으로 패한 것에 대한 그 부끄러움에 대해 반성하고 그 기억을 통해서 오늘 승리를 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선수생활 아쉬웠던 점
너무 많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아픔과 속죄와 그리고 아쉬움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 그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다. 조금 아쉬운 걸 떠나서 그때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내가 은퇴를 한다 했을 때 최연소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오는 데 그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너무 어렸고 돌이켜보면 저는 축구란 많은 프로 축구 선수란 많은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회적 책임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한 경험 덕분에 성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에게 미안했다. 당시 월드컵 결과는 늘 죄송했고, 그 결과에 따라 생계가 달린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선수 시절 기억에 남는 3골
첫 번째 골은 2009년 이집트 청소년 월드컵에서 미국전에서 패널티킥 넣고 달려가며 세레머니 할 때 팔을 벌리고 세레머니 한 게 있다. 그때 '내가 이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 그 과정들의 고통을 이겨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느낌이 아직도 이 팔에 있는 듯한 그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 컵에서 호주랑 할 때 골 넣었던 골이다. 이유는 첫 경기 바레인전 때 골 넣었을 때, 두 골을 넣었을 때는 그저 좋았지만 이후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었을 때 그 짜릿함은 아직 잊지 못한다.
기성용, 이청용과 나눈 대화
저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고 제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하는 사이다. 저희가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저희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항상 채팅방이 시끄러워진다. 제가 은퇴를 한다고 얘기했을 때도 물론 통화를 했는데 거두절미하고 굉장히 아쉬워하고 아쉬워하고 또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고 항상 두 사람의 장점들을 보면서 많이 따라가려 했다. 그만큼 너무나 훌륭한 친구들이고 훌륭한 선수였다.
어드바이저로 제주에 어떤 노하우를 공유할지
급하게 뭔가를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한국에서 일하던 분들의 존중심이 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1년은 옆에서 지켜보며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기성용, 이청용보다 1년 일찍 은퇴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듣고 아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거두절미하고 유소년 시스템이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확고하기 떄문에 최대한 지혜롭고 현명하게 하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현재 K리그 시스템
2010년부터 K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2022년에 돌아왔는데 물론 K리그에서 배출하는 유럽 선수들도 많아졌고 기회도 많아졌다. K리그가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며 행정적인 부분도 그 시간에 맞게 좋아졌으며, 저는 한국 축구 시장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어떻게 이 축구판에 도움이 될지 생각하면 너무 설레서 잠을 못 잔다. 해줄 수 있는 것도 많고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우리 한국 축구가 좀 더 발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한데, 어쨌거나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변해야 될 부분도 많다. 가장 변해야 될 부분으로는 잔디가 있다. 그래서 저희 구단에 잔디 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제주 잔디가 K리그 팀 중에서 좋은 편인데, 잔디 관리에 신경써주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잔디 문제는 제도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잔디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첫번째로 선수들이다. 두번째는 팬들이고, 선수들을 보러 오시는데 이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기 때문에 잔디는 제도적인 부분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리더십과 손흥민의 리더십 차이
흥민이의 주장 리더십을 본 적이 없어서 특별한 말을 하긴 어렵다. 제 리더십은 압박에서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것을 강조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승패에 중요한 역할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은퇴를 결정한 이유
일단 내 근육이 버텨주지 못한다. 발목도 그렇다. 운동을 하다가 관절에 데미지를 받으면, 이 정도의 통증은 안고 있어도 된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회복 기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이러한 시간들이 계속 반복적이다 보니 은퇴를 결정하는 데 있어 미련없이 축구화를 벗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하는 본인에게 칭찬
저보다는 여기까지 저를 만들어준 우리 아버지에게 감사하다고 하고 싶고, 제가 결혼을 일찍 했는데 제 아내가 정말 많이 고생했다. 첫쨰를 낳고 외국에서 대표팀 경기를 하러 가면 10일 넘게 자리를 비울 때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옆에서 도와준 처제도 고맙다. 다 가정이 있다면 그럴 것 같다. 남자는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서나 자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이 생기면 책임감이 따르고 가정이 너무 고맙다고 느낀다. 또 오랫동안 키워준 부모님도 너무 감사하다. 저한테까지 오지 않아도 상관 없을 정도로 너무 감사하다. 가족이 좀 더 강조됐으면 좋겠다.
기자회견을 시청하며 제2의 구자철을 꿈꾸는 유소년들에게 한 마디
그냥 다 똑같은 것 같다. 목표를 정하고 저는 중학교 2학년때 목표가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당시 박주영, 백지훈 등의 형들이 있었는데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너무나 갖고 싶은 목표를 정하는 게 가장 첫번째인 것 같다. 그 목표가 없으면 동기 부여가 없는 사람과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표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꿈을 그려봤으면 좋겠다. 제가 모든 한국 유소년을 다 책임질 수 없지만, 제주 유소년 선수들은 제가 책임지고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눈여겨보는 후배들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돌연변이가 있다. 지성이 형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갈 때 놀랐고 흥민이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할때도 멋있었고, 강인이가 파리 생제르맹(PSG), 민재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것도 신기했다. 후배들이 한국 축구 수준을 높여주는 것 같다. 단지 해외 진출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닌, 더 큰 클럽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옛날 같았으면 '내 꿈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야'라고 하면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손흥민이 해냈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는 꿈이 아니라 생각한다.
유스 어드바이저로서 계획은
당연히 내가 제주 소속이기 때문에 제주 선수 구성을 단단하게 하는 게 목표이며 선수들을 많이 키워내서 선수들이 꿈을 찾아 떠날때 재정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그것이 유소년 시스템의 기본 목표라 생각한다. 꾸준히 지원을 해서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큰 대들보가 돼서 분데스리가 득점왕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인 것 같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한 마디
나는 해외에 갈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 다음에 저한테 가장 큰 동기 부여를 준 사람이 기성용, 이청용이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을 그들이 갔기 때문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2010년 시즌 들어갈 때 제주에 해외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후 에이전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결실을 맺었다. 명확하게 생각을 딱 정리해서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
구자철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우리나라 최초로 동메달을 따냈던 멤버 중 한 명이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