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구단 절반이 미국 자본으로 넘어갈까.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이 21일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디애슬레틱은 최근 플로리다에서 열린 사커엑스(Soccerex) 컨퍼런스를 취재하면서 프리미어리그 구단이 미국 자본으로 넘어갈 날이 다가왔다고 21일 전했다.
디애슬레틱은 “사커엑스 컨퍼런스는 전 세계 축구계 투자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틀간 진행된 컨퍼런스에는 미국과 유럽 축구단 소유주, 투자자, 경영진뿐 아니라 스포츠 에이전트, 리그 대표, 변호사, 소프트웨어 전문가, 인공지능 마케터,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모였다”고 전했다. 매체는 “그런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참석자는 영국 정부의 대표단이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인물은 리처드 앨버트다. 그는 영국의 북미 자본 투자 부서를 이끄는 인물이다. 앨버트 임무는 북미 자본을 영국 경제, 특히 청정 에너지, 부동산, 기술 분야에 유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1년 동안 그의 업무에 새로운 미션이 추가됐다. 스포츠, 특히 잉글랜드 축구다.
영국 정부는 프리미어리그와 2부리그인 풋볼 리그에서 자본이 필요한 구단이나 매각을 고려 중인 구단과 신뢰할 수 있는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매칭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앨버트는 “거의 매일 우리 팀이 잉글랜드 축구 구단 매각 또는 인수 문의를 받고 있다”며 “미국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부동산 펀드, 공공 부문 연금 펀드 등이 활발하게 관심을 보이거나 실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미어리그는 영국 경제에서 가장 성공적인 수출품 중 하나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89개국에 방송된다. 약 18억 7000만 명이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또한, 미국 NBC와의 미디어 권리 계약에서 시즌당 4억5000만 달러(약 6299억원)를 벌어들일 정도로 상업적 가치도 크다. 디애슬레틱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수 지분을 보유한 미국 소유주는 전무했다”며 “2024년 현재,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중 9개 구단이 미국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구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애스턴 빌라, 리버풀, 첼시, 풀럼, 본머스, 크리스탈 팰리스, 입스위치 타운이다. 이 중에는 프리미어리그 팬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글레이저 가문(맨유), 크뢴케 가문(아스널), 토드 보엘리(첼시)와 같은 인물들도 포함된다. 디애슬레틱은 “텍사스 기반 프리드킨 패밀리가 에버턴 인수를 앞두고 있다”며 “현재 토트넘, 브렌트퍼드, 웨스트햄 같은 구단들도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로스차일드 은행에 의뢰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 자본이 프리미어리그 구단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진입장벽이 낮다. 미국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인수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2022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팀 베가스 골든 나이츠 소유주인 빌 폴리는 본머스를 1억2000만 파운드(약 2125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NFL 팀 평균 가격은 47억 달러(약 6조 5786억원)다. 글로벌 성장 가능성도 많은 편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층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디어 권리와 직접 소비자 대상 스트리밍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 수익모델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디애슬레틱은 “리버풀과 브라이튼 같은 구단은 스마트한 선수 거래와 혁신적인 수익 창출 모델로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며 “리버풀은 2017~2018시즌 1억 2500만 파운드(약 2214억원) 세전 수익을 기록하는 등 매력적이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자들은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단순히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 자산으로 보고 있다. 첼시 대주주 클리어레이크 캐피털은 젊은 선수들을 장기 계약으로 영입하며 지속 가능한 성공을 노리고 있다. 리버풀 소유주 펜웨이스포츠그룹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0년 리버풀을 3억 파운드(약 5312억원)에 인수한 후, 현재 구단 가치는 40억 파운드(약 7조 833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리버풀은 2020년 프리미어리그에서 30년 만에 우승했다.
미국 투자자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경기가 해외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커진다. 펜웨이스포츠그룹 회장 톰 워너는 “언젠가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뉴욕에서 열리기를 바란다”며 전 세계 도시를 돌며 경기를 개최하는 구상을 언급했다. 수익 극대화 전략도 강화될 것이다. 디애슬레틱은 “팬들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 방식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부동산 개발, 기술 통합, 경기장 확장과 같은 분야에서도 확장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팬들과의 갈등도 점쳐진다. 글레이저 가문처럼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운영 방식은 팬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디애슬레틱은 “프리미어리그는 이미 글로벌 스포츠 산업 중심에 있다”며 “새로운 미국 자본이 프리미어리그 미래를 어떻게 형성할지 앞으로 몇 년간 주목할 이슈”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