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신태용 매직'이 아시아에 다시 한 번 위력을 떨쳤다.
인도네시아 축구 최고의 날을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이 느닷 없는 경질 위기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만들어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완파하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서 고대하던 첫 승을 올렸다.
2020년 인도네시아 지휘봉을 잡은 신 감독은 사상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를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결정되는 예선 단계까지 진출시킨 게 이어 이 단계에서 역사적인 첫 승리까지 지휘해냈다.
경기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길 수 있다. 꼭 잡겠다"던 그의 다짐과 약속이 현실이 됐다.
신 감독이 아시아 축구사에서도 회자될 만한 충격적인 완승을 이뤄냈다.
특히 상대가 최근 두 차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1994 미국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커지게 됐다.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은 지난 19일(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대형 경기장 겔로라 붕카르노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C조 6차전 사우디이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 32분과 후반 7분 마르셀리노 퍼디넌이 연속골을 터트린 것에 힘입어 2-0으로 이겼다.
이날 승리를 통해 인도네시아는 3차예선 첫 승을 거두고 1938냔 프랑스 월드컵 이후 88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 희망을 되살렸다.
C조에선 일본인 5승 1무(승점 16)로 1위를 달리며 본선행 티켓을 거의 손에 쥔 가운데 나머지 5개팀이 난형난제 같은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날 바레인 원정에서 2-2로 비긴 호주가 1승 4무 1패승점 7)로 2위를 달리고 있으나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중국이 모두 호주에 불과 1점 뒤진 승점 6으로 3위부터 6위를 달리고 있다.
5개팀 어느 누가 3차예선 각 조 1~2위에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거머쥘지 모르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축구사 첫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진출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본선행 직행 티켓보다는 각 조 3~4위 총 6개팀에 주어지는 4차예선에 진출, 거기서 2.33장 주어진 본선 티켓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4차예선은 물론 C조 2위를 차지해 본선에 바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게 됐다.
인도네시아는 내년 3월과 6월에 호주, 바레인, 중국, 일본을 차례대로 상대한다.
이날 승리는 특히 신 감독 개인에게도 여러 모로 값진 승리가 됐다. 인도네시아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신 감독을 도리어 경질해야 한다는 황당한 여론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3차예선 초반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으나 중국과 일본전에서 1-2, 0-4로 연달아 패하면서 팬심이 180도 바뀌었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3차예선을 앞두고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인도네시아 혈통의 선수들에게 대거 대표팀 자격을 부여했다. 네덜란드 1부리그 등 유럽과 미국의 좋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경쟁력을 쌓았는데 신 감독은 철저한 실력 위주 라인업을 꾸리면서 이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신 감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급기야 사우디아라비아전 성적이 나쁘면 신 감독을 물러나게 해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신 감독은 완승을 통해 이런 배은망덕한 여론까지 잠재웠다.
인도네시아는 이날 내용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앞섰다. 탄탄한 수비와 빠른 역습으로 중동 최고의 팀을 압도했다.
전반 초반 스트라이커 라파엘 스트라윅이 일대일 찬스에서 득점하지 못해 땅을 친 인도네시아는 두 번째 찬스는 보란 듯 살렸다. 라그나르 오랏망고엔이 왼쪽 측면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제치며 컷백 패스를 내주자 페널티지역 정면에 있던 퍼디넌이 오른발 감아차기로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잉글랜드 2부리그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퍼디넌은 후반 12분 역습 찬스에서도 페널티지역 안에서 한 차례 슈팅한 것이 상대 벽을 맞고 다시 자신에게 향하자 침착하게 오른발로 다시 차 넣었다.
이번 인도네시아전을 앞두고 로베르토 만치니 전 감독을 1000억원 이상의 위약금을 주고 내보낸 뒤 올 상반기 한국 대표팀 사령탑 후보에도 올랐던 프랑스 출신 에르베 르나르 감독을 선임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특단의 조치도 소용이 없었다.
르나르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에 2-1 역전승을 거두고 월드컵 역사에 남을 승리를 챙길 때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감독이었다. 이후 프랑스 여자대표팀을 지휘한 뒤 다시 사우디에 왔지만 신태용 감독 용병술에 무릎을 꿇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후반 44분 홈팀 센터백 저스틴 허브너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면서 수적 우세를 맞았으나 득점하지 못했다.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는 등운도 따르지 않았다.
신 감독은 골이 터질 때마다 두 팔을 치켜들면서 환하게 웃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인도네시아는 마르텐 파에스가 골키퍼로 나섰으며 제이 이드제스, 리즈키 리도, 샌디 월시, 칼빈 페어동크, 저스틴 후브너, 퍼디넌, 스트라윅, 오랏망고엔, 이바르 제너, 톰 하예가 필드플레이어로 출격했다.
이 중 선제골을 넣은 퍼디넌, 수비수 리도를 제외한 9명이 유럽에서 태어난 인도네시아 혈통의 선수들이다. 8명이 네덜란드 출생이며 한 명이 벨기에에서 나고 자랐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경기 뒤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전술 구상이 잘 이뤄졌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드러냈다.
인도네시아 언론에 따르면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원 팀으로 잘 뛰었고 특히 팬들의 응원도 훌륭했다"며 "팬들과 하나가 돼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우리가 준비한 것을 선수들이 잘 해줬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에 대해 선수들에게 감가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신 감독은 스트라윅 원톱 전술을 수정해 스트라윅과 퍼디넌이 투톱으로 뛰는 전술을 들고 나왔는데 퍼디넌이 펄펄 날면서 결과적으로 100% 적중했다.
신 감독은 "사우디가 압박이 좋기 때문에 전술을 좀 바꿨다. 중원에 미드필더 3명이 잘 뛰었다. 내가 지시한 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라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 지휘봉을 잡아 올해 최고의 한 해를 써내려갔다. 지난 1~2월 아시안컵에서 중국을 제치고 16강에 오르면서 동남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지키더니 4~5월 열린 23세 이하(U-23) 아시안컵에선 황선홍호를 8강에서 누르며 한국에 40년 만의 남자축구 올림픽 본선 진출 좌절을 안겼다. 이어 4강에 올라 올림픽 본선행에 도전했으나 대륙간 플레이오프까지 거친 끝에 아쉽게 본선행을 이루지 못했다. 이어 이번 월드컵 3차예선에서 "인도네시아는 당연히 꼴찌할 것"이라는 예상을 바웃게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남은 4경기 중 바레인, 중국과의 홈 경기에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10월 바레인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승리에 다가섰으나 주심이 후반 추가시간을 고지된 것 이상으로 주는 등 석연 찮은 판정 속에 통한의 동점포를 얻어맞아 승리를 빼앗겼다. 이어 열린 중국 원정에선 점유율에서 70%에 가까운 우위를 점하고도 상대 역습에 말려 1-2로 진 적이 있다.
중국은 지난달 인도네시아전에 이어 지난 15일 바레인 원정에서 후반 추가시간 극장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첫 본선행 희망을 살렸으나 이날 일본에 헤더골 3개를 내줘 1-3으로 줬다.
일본은 전반 39분과 오가와 고키츼 선제골, 전반 추가시간 이타쿠라 고의 추가골, 후반 9분 다시 오가와의 쐐기골로 쾌승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