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트 이동준 대표
지난해 3월 사업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스포츠 에이전트 이동준(40) 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는 베트남축구협회에서 새 감독을 구할 것이란 소식을 접했다. 성적 부진으로 필리프 트루시에(70·프랑스) 감독이 물러난 후였다. 그의 머릿속에 ‘야인’으로 지내고 있던 김상식(49) 감독이 떠올랐다. 2021년 전북 현대 사령탑에 올라 그해 K리그 우승을 거머쥔 김 감독은 2023년 5월 전북이 리그 10위까지 떨어지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설 곳을 찾고 있었다.
태국 사령탑을 맡았던 일본인 감독 등 4명이 최종 후보에 오른 가운데 이동준 대표는 ‘로열티(loyalty·충성심)’를 김상식 감독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삼고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김 감독이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K리그 명문 전북에서 15년 연속 몸담으며 리그 우승컵을 9번 든 사실을 강조하면서, 베트남 축구가 최근 가파르게 성장한 만큼 빅클럽에서 오랜 시간 스타 선수들과 함께한 김 감독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베트남 축구협회는 이동준 대표가 김상식 감독을 추천한 지 한 달여 만에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여기엔 베트남 국민 영웅인 박항서(66) 전 감독 후광 효과도 작용했다.
2017년부터 베트남을 맡아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미쓰비시컵 우승(2018)을 비롯해 아시안컵 8강(2019), 동남아시안게임 우승(2019·2021) 등 눈부신 업적을 쌓아올린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축구와 연결해준 인물도 이 대표다. 실업축구 팀인 창원시청 사령탑이었던 박 감독은 이 대표의 지원 속에 당시 300대1 경쟁률을 보인 베트남 감독직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동준 대표는 경남과 전남, 상무 등 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낸 박 감독 경력을 짚으며 ‘언더도그 엑스퍼트(underdog expert·약팀 전문가)’란 이미지를 앞세워 선택을 받아냈다.
박항서 감독 성공으로 이 대표도 베트남 축구계에선 일약 귀인 대접을 받았다. 물론 그 역시 초창기엔 문전박대를 수시로 당했다. “2015년 베트남에 K리그 중계권을 파는 과정에서 베트남 선수가 한국에서 뛴다면 현지 시청률이 잘 나올 것 같아 쯔엉이란 선수를 인천에 입단시켰어요. 소중한 기회라 수수료도 안 받고 그 선수를 정성껏 돌봤는데 베트남 축구계에 좋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협회가 감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됐고, 그게 ‘박항서 신화’ 시작이 된 거죠.”
박 감독에 이어 김상식 감독이 7년 만에 베트남에 미쓰비시컵 우승을 안기자 베트남 축구계에서 이 대표 입지는 더 강화됐다. 이 대표는 “박항서 감독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훈련장에 왔던 친구들이 이젠 벤츠와 페라리를 타고 오더라”며 “그만큼 성공의 맛을 보고 배부른 선수들이 많았는데 김 감독은 코치 시절 전북에서 성장해 유럽까지 진출한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나 이재성(마인츠)을 통솔한 경험을 살려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줬다”고 했다.
중학 시절까지 태권도 선수였던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 FIFA(국제축구연맹) 에이전트 시험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 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골프 등 스포츠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아시아 축구 시장에 눈을 떴고, 직장을 나와 본격적으로 에이전트 길을 걸었다. 그동안 중국과 태국, 베트남 등에 보낸 한국인 지도자와 선수가 100명이 넘는다. 이번 미쓰비시컵에서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와 3대3으로 비기는 등 2무(2패)로 선전한 라오스의 지휘봉은 하혁준(전 수원삼성 피지컬 코치) 감독이 잡고 있는데 그 역시 이 대표 작품이다. 그는 “라오스가 후반 25분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피지컬 전문가인 하 감독을 추천했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사람이 필요한 곳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아내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