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다시 승리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하나은행 K리그1 2024 37라운드를 치른 수원FC가 강원FC에 4-0 대승을 거뒀다.
올 시즌 수원FC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힘든 싸움을 할 거라 예상됐다. 지금이야 안데르손이나 정승원 등이 성공한 영입으로 여겨지지만, 당시 K리그 수위급으로 여겨지는 선수는 권경원 외에는 없다시피 했다. 김 감독도 U20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지도자라는 기대감과 함께 숱한 전례처럼 프로 리그에서는 성적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우려도 많았다.
수원FC는 개막전 인천유나이티드에 1-0 신승을 거둔 뒤 3무 2패로 흔들렸다. 김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축구를 구축해나갔다. 수비를 중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대신 패배하더라도 조직력을 가다듬는 데 힘썼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의 합은 맞아들어갔고, 초반에 좋지 않았던 짧은 패스를 통한 빌드업도 무르익어갔다. 이승우를 마냥 선발로 쓰는 대신 '게임 체인저'로서 후반에 주로 기용하는 전술적 선택도 돋보였다. 4월 14일 대전하나시티즌과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둔 뒤로 수원FC는 9월까지 3연패를 당한 적이 없었다.
두 번째 위기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찾아왔다. 수원FC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베테랑들을 영입할 수 있었던 건 일종의 신사 협정과 같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경원은 좋은 제안이 온다면 팀과 작별할 게 자명했고, 실제로 아랍에미리트의 코르파칸클럽으로 떠났다. 여기에 이승우가 계약 기간을 반 년 남기고 전북현대로 이적했고, 이영준은 전역 후 스위스의 그라스호퍼로 가는 도전을 택했다. 그동안 보강다운 보강은 중국에서 풀려난 손준호와 이승우 이적의 일환과 같은 한교원 영입 정도였다.
김 감독은 일부 선수들의 역할을 바꾸는 걸로 이를 극복했다. 대표적으로 도우미에 가까웠던 안데르손은 이승우가 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골문을 겨냥하는 선수로 바뀌었다. 이승우가 가기 전 24경기 1골 11도움을 기록했던 그는 이승우가 떠난 뒤 13경기 6골 3도움으로 득점 빈도를 상당히 높였다. 서서히 손준호를 중용하면서 윤빛가람의 체력 안배를 돕고 활동량이 좋은 이재원을 중용한 것도 팀이 빠르게 공격하는 데 도움을 줬다.
세 번째 위기는 손준호가 중국 리스크로 수원FC를 떠나면서 찾아왔다. 사실상 여름 유일한 보강이라고 봐도 무방했던 손준호가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떠나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크게 뒤숭숭해졌다. 부상자도 늘어나면서 벤치를 채우는 것도 어려워졌다. 직후 치러진 홈경기에서는 전북에 0-6 패배를 당했다. 더 이상 기존 전술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팀이 망가졌고, 만약 하위 스플릿 팀들이 주춤하지 않았다면 상위 스플릿도 장담할 수 없었을 수준이었다.
김 감독은 서울 원정에서부터 해답을 찾아나갔다. 포백 대신 스리백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선수 조합을 실험했다. 여름에 영입한 노경호가 중용된 시기도 이때부터였다. 활동량과 탈압박이 우수한 노경호는 3-4-3 전술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선수였다. 이와 함께 원래부터 공격적인 재능이 있던 박철우를 높게 올리고, 오른쪽 스토퍼로 수비력과 오버래핑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이용을 배치했다. 전방 스리톱은 포지션 구분 없이 빈자리를 채우며 삼각편대를 유지했다.
이전 2경기에서 10실점을 했던 수원FC는 이때부터 2실점 이상을 하지 않았다. 비록 공격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승리를 하기까지 9경기나 걸렸지만, 경기력 자체는 대승을 거둔 강원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임 체인저'가 모두 사라졌으니 경기 자체를 단단하게 운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적 요인도 있었지만, 뚝심있게 지금 전술을 밀어붙인 김 감독의 공도 분명하다.
선수들은 김 감독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 강원전 수훈선수 기자회견을 진행한 안데르손은 "처음 왔을 때부터 말은 통하지 않지만 통역사와 함께 항상 어려움은 있는지, 원하는 건 뭔지 물어봤다. 직접 영어로 물어볼 때도 있었는데 외국인으로 큰 도움이 됐다"라며 "믿음을 주셔서 경기장에서 잘할 수 있었다. 때로는 요구도 하시고 대화도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믿어주신다는 느낌이 있다"라며 수원FC 입단 동기로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정승원은 두 달 전 '풋볼리스트'와 만난 자리에서 김 감독에 대해 "감독님께서 내 능력을 많이 알아 믿음을 주셨고, 그러다 보니 수원FC 이적이 끌렸다. 감독님을 보고 움직였다"라며 "올림픽 대표팀 때는 코치로서 제게 골 좀 넣어보라는 장난을 치곤 하셨다. 감독님이 되고서는 세세하게 주문을 많이 해주신다. 감독님 말씀을 들으면 나도 좋은 마음가짐으로 의지가 충전된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8경기 동안 무승이었지만 경기력이 좋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득점만 터지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준비한 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다양한 옵션을 가질 수 있는 기간"이었다며 무승 기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번 시즌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매번 답을 찾아내며 수원FC를 다시금 본 궤도로 끌어올렸다. 자칫 좋지 않은 분위기가 다음 시즌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고집해 분위기를 반등시켰다. 수원FC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내야 하는 팀이지만, 김 감독과 함께라면 적어도 단번에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진= 풋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