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혁이 토트넘홋스퍼에서 1군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출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최근 양민혁에 대해 토트넘 내부 소식에 정통한 인물(ITK, In the know) 폴 오키프가 던진 말이 온라인을 달궜다. 내용인 즉 토트넘 한 팬이 오키프에게 '양민혁이 뛰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단순히 전술적 이유나 부상 때문인가'라고 묻자 오키프는 '단지 잉글랜드와 잉글랜드 축구에 양민혁이 더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이어 다른 팬이 '그렇다면 양민혁이 U21 팀에서 뛸 수 있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오키프는 '아마 토트넘도 고려할 사항'이라며 부정하지 않았다.
양민혁이 토트넘으로 떠날 때 받았던 기대치를 고려하면 확실히 아쉬운 대목이다. 양민혁은 K리그1 강원FC의 준우승을 이끄는 중심으로 활약했고, 지난여름 일찌감치 토트넘 입단을 확정지었다. 이후 K리그1에서 반 시즌을 더 소화하며 12골 6도움을 기록해 K리그1 영플레이어와 베스트 11에 드는 영예를 누렸다. 토트넘이 때마침 공격진에 부상자가 다수 발생해 곧바로 1군에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양민혁은 12월 중순 토트넘에 조기 합류했지만 아직까지 1군 데뷔를 하지 못했다. 리버풀과 잉글랜드 카라바오컵 4강 1차전 벤치에 포함돼 사나흘 뒤 열릴 잉글랜드 FA컵 3라운드 출장이 기대되기도 했다. 상대가 잉글랜드 5부리그(내셔널리그)의 탬워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민혁은 탬워스전 아예 명단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앤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로테이션을 가동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실망스러운 결과임에는 분명했다.
현재 토트넘에는 양민혁의 동년배 선수들이 활약 중이다. 양민혁과 동갑내기인 루카스 베리발과 아치 그레이는 준주전급 이상의 취급을 받고 있다. 양민혁보다 한 살 어린 마이키 무어 역시 간간이 출장해 최소 벤치 자원으로 분류된다. 유망주 기용을 멀리하는 팀이 아니었기에 양민혁의 출장도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이 컸고, 그만큼 아쉬움도 커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양민혁과 상기한 세 선수는 시작 지점부터 다르다. 프로 레벨에서 프리시즌을 거치는 건 정말 중요하다. 베리발과 그레이는 프리시즌을 거치며 포스테코글루 감독 축구를 어느 정도 체득한 선수들이다. 무어는 아예 토트넘의 철학을 흡수하며 자란 성골 유스다. 이제 막 토트넘에 합류해 구단 적응기를 거치는 양민혁과 단순히 나이대로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각 포지션의 선수층도 고려해야 한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미드필더로 3명을 기용하는데 현재 1군 주전급 선수는 제임스 매디슨, 로드리고 벤탕쿠르, 이브 비수마, 파페 마타르 사르 정도다. 게다가 경기 중 가장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도 미드필더다. 베리발이 후보로라도 경기를 뛸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레이의 경우는 조금 더 특수한데, 원래는 풀백 겸 미드필더여야 했지만 현재는 센터백으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크리스티안 로메로, 미키 판더펜, 벤 데이비스가 모두 부상을 당해 그레이가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공격진은 손흥민, 도미닉 솔랑케, 데얀 쿨루세프스키라는 비교적 확실한 주전이 있는 데다 브레넌 존슨, 티모 베르너, 히샤를리송 등이 있어 벤치 경쟁도 치열하다. 베르너와 히샤를리송, 윌손 오도베르 등이 번갈아 부상을 당해도 무어와 윌 랭크셔 등 성골 유스들을 제쳐야 한다. 토트넘 유소년 출신으로 양민혁보다 앞선 출발 지점에 있는 이들을 밀어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토트넘 주장이자 대체 불가 자원인 손흥민조차 토트넘 적응까지 꼬박 한 시즌이 걸렸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한 선수였음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에 녹아들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리그 적응기가 짧은 선수들이 많아지기는 했어도 양민혁 정도로 어린 선수가 지금 1군 경쟁에 어려움을 겪는 건 오히려 당연한 수순이다.
양민혁보다 두 살 많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브렌트퍼드에 합류한 김지수도 한 시즌을 팀 적응에 할애했다. 이번 시즌에도 전반기가 다 지나갈 때에야 팀 센터백 줄부상과 맞물려 PL 데뷔에 성공했다. 김지수는 이 때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잉글랜드 FA컵에 풀타임 출장한 건 물론 지금도 꾸준히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양민혁이 지금 U21 팀에서 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U21을 통해 잉글랜드 축구를 습득하고 좋은 활약을 펼쳐 1군에 진입하는 게 더 정석적인 루트다. 임대를 떠나는 건 또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양민혁은 지난 1년을 강원FC에서 꾸준히 뛰어왔다. 지금 토트넘에서 1군으로 뛰지 못하는 건 오히려 체력 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연히 손흥민이 말했듯 PL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양민혁 본인의 몫이다. 그렇다고 한들 지금 토트넘 1군에 들지 못했다고 조급함을 가질 필요는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처럼 양민혁이 스스로를 믿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트넘홋스퍼 인스타그램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