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를 찾은 김상식(4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기분 좋은 꿈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됐다”며 활짝 웃었다. 김 감독이 이끈 베트남 대표팀은 지난 6일 아세안축구연맹(AFF)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하 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태국을 3-2로 꺾고, 1·2차전 2연승으로 우승했다.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이 대회에서 베트남이 우승한 건 박항서 전 감독 시절인 지난 2018년 이후 6년 만이고 통산 세 번째다.
김 감독은 각종 보너스 등 우승에 따른 보상을 만끽하는 중이다. 팜민찐 베트남 총리가 선수단에 1급 노동훈장을 수여하며 금일봉을 전했다. 협회와 기업들이 내놓은 우승 보너스는 200억동(11억6000만원)을 넘었다. 각종 개인 선물도 답지했다. 그는 “골프회원권과 플래티넘 카드가 선물로 들어왔다고 전해 들었다”며 “베트남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이 요금을 받지 않으려고 해 기분 좋은 실랑이가 이어진다”고 소개했다.
우승 직후 화제를 모은 김 감독의 댄스 세리머니는 선수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부임 직후 선수들과 면담하는데,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2021년 전북 현대 감독 당시 우승 직후 댄스 세리머니를 선보인 것, 심지어 선수 때였던 2006 독일월드컵 프랑스전 당시 지네딘 지단을 상대로 거칠게 태클했던 사실까지 알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선수들이 ‘미쓰비시컵에서 우승하면 우리를 위해서도 댄스를 보여달라’고 해 흔쾌히 오케이 했다. 우승까지 지옥문 앞에 여러 번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어 더 흥겨운 댄스가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지도자 김상식’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세 가지를 꼽았다. 호랑이, 변화, 그리고 자신감이다. 그는 “평소 편하고 친근하게 대하지만, 꼭 필요할 땐 냉정하고 무섭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며 “그럴 때면 호랑이가 사냥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프로페셔널리즘을 강조하는 나만의 방식”이라 말했다. 이어 “현실에 만족하는 순간 곧바로 퇴보가 시작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아울러 결과에 상관없이 도전하는 과정은 자신감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며 “아직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 베트남 선수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향후 이중국적 또는 귀화 선수를 활용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김 감독 복안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브라질 출신 귀화 공격수 응우옌 쑤언 손이 맹활약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이미 동남아 축구계는 귀화 선수가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며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계 혼혈선수로 대표팀 상당 부분을 채웠다. 필리핀·싱가포르도 이중국적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이어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라서 주변국보다 귀화 선수 활용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라면서도 “전력 보강이 꼭 필요한 포지션에 한해 신중하게 접근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도 베트남계 다문화 가족 출신 선수가 꽤 있는 거로 안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열릴 2027 아시안컵 예선과 올해 말 동아시안(SEA) 게임을 다음 과제로 꼽은 김 감독은 “장기적으로 베트남 축구의 염원인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