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이겼지만 씁쓸한 승리였다.
그나마 손흥민이 건재를 알리며 해결사 역할을 한 것이 다행이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가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3라운드에서 5부리그 팀을 상대로 '캡틴' 손흥민까지 활용한 끝에 연장전에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호주 출신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12일(현지시간) 영국 탬워스의 '더 램 그라운드'에서 열린 2024-2025 FA컵 3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5부리그에 해당하는 내셔널리그 소속 탬워스와 전·후반을 0-0으로 비긴 뒤 이어진 연장전에서 손흥민 등 주전급을 투입한 끝에 3골을 터트리고 3-0으로 이겼다.
이날 경기에서 손흥민은 교체 명단에 포함됐다가 연장전 시작과 함께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후반에 여러차례 찬스를 놓친 티모 베르너 대신 운동장을 밟았다. 답답했던 토트넘 공격을 풀어나가는 열쇠 역할을 했다. 특히 토트넘이 1-0으로 앞서고 있던 연장 후반 2분 질풍 같은 드리블 뒤 정확한 패스를 통해 데얀 쿨루세브스키의 추가골을 도왔다.
이번 시즌 공식전 7번째 도움을 올렸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5골 6도움을 포함해 이번 시즌 손흥민의 전체 공격 포인트는 14개(7골 7도움)로 늘었다. 손흥민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와 리그컵에서도 각각 한 골씩 기록하고 있다.
탬워스에 끌려다니다가 연장전 3골이 터져 이긴 토트넘은 아스널에 덜미를 잡혀 3라운드 탈락했던 2013-2014시즌 이후엔 11시즌 연속 FA컵 4라운드 진출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에서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 팀 중 유일하게 5부 팀과 만나는 행운의 대진을 받고도 졸전 끝에 연장전까지 끌려간 것은 질책 받을 만하다. 주전급 선수들이 계속 동원된 끝에 이겼다.
지난해 7월 토트넘과 6년 계약을 체결한 뒤 지난달 팀에 합류, 9일 리그컵(카라바오컵) 준결승 1차전 리버풀과 홈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처음 이름을 올렸던 양민혁은 이날은 명단에서 아예 제외돼 데뷔전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상대가 5부리그라는 점 때문에 양민혁에게 선발 혹은 교체 투입 등을 통해 토트넘 1군 데뷔 기회가 갈 것으로 여겨졌으나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아예 명단에서 빼버렸다.
양민혁보다 한 살 어린 2007년생 잉글랜드 공격수 마이키 무어가 출전 기회를 얻어 베르너, 브레넌 존슨과 선발 공격진을 이뤘다. 양민혁과 동갑인 스웨덴 미드필더 루카스 베리발도 후반 교체투입으로 기회를 얻었다. 둘 모두 이미 토트넘 1군 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다.
이날 토트넘이 상대한 탬워스는 잉글랜드에서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리그 중 가장 낮은 단계의 내셔널리그에서도 이번 시즌 24개 팀 중 16위에 머문 팀이다.
샌드위치 업체 사장, 벽돌 기술자, 금융 상담사, 아카데미 코치 등 본업이 따로 있는 '파트 타임' 선수들이 즐비하다.
앤디 피크스 감독조차 한 대학에서 학습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보며 감독 일을 병행하다가 이번 토트넘과의 대결이 성사되면서 정규 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축구 환경에선 토트넘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팀이다.
토트넘은 이런 팀을 상대로 주전급 선수를 다수 내보내고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후반 90분간 펼쳐진 모습은 토트넘이 5부리그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악조건은 있었다. 약 4000석 규모의 '더 램 그라운드'는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무척 가깝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바로 뒤에 관중석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일부 관중석은 입석으로 운영돼 정겨우면서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뤘다. 그라운드는 인조 잔디라 토트넘으로선 경기력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킥오프도 지연됐다. 탬워스 골키퍼가 서 있던 쪽 골대의 크로스바 쪽 그물에 구멍이 난 하자가 발견된 것이다.
본업이 '건물 측량사'인 자스 싱 골키퍼가 직접 고쳐보려다가 여의치 않자 다른 선수가 동료의 목말을 타고 올라가 테이프로 그물을 크로스바와 연결하는 보기 드문 장면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홈팀은 골대 수리 성공한 것에 고무된 듯 전반 시작하자마자 공격을 감행했다. 골대를 고찬 탬워스 측면 공격수 베크-라이 에노루가 경기 시작 약 30초 만에 드리블로 페널티 지역 왼쪽을 돌파해 슈팅을 날려 경기 초반 안팎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전 골키퍼 굴리에모 비카리오의 부상, 후보 골키퍼 프레이저 포스터의 부진 등으로 최근 영입된 체코 출신 안토닌 킨스키가 몸을 날려 쳐냈다.
전반 32분엔 토트넘 미드필더 제임스 매디슨이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렸으나 싱 골키퍼가 귀신 같이 막아내며 작은 경기장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후반에도 싱을 비롯한 탬워스 수비진의 육탄 방어를 좀처럼 뚫지 못한 토트넘은 후반 23분 무어와 미드필더 파페 사르를 빼고 주전 스트라이커 도미니크 솔란케와 베리발을 내보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토트넘은 후반 막판 상대에 두 차례 결정적인 찬스를 내주며 FA컵에서 5부리그 팀에 져 탈락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을 뻔 했다.
이번 시즌부터 비길 경우 재경기 없이 연장전, 승부차기에 돌입하는 규정에 따라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손흥민과 쿨루세브스키, 제드 스펜스까지 그라운드에 들어가면서 토트넘이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3골이 터졌다.
연장 전반 11분 탬워스의 자책골로 균형이 깨졌다.
손흥민이 중원에서 얻어낸 프리킥 때 키커로 나선 페드로 포로가 페널티 지역 안으로 낮게 찔러줬고, 존슨의 크로스에 이은 골대 앞 혼전에서 탬워스 미드필더 네이선 치쿠나의 발을 맞고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며 선제 결승 골이 됐다.
이어 연장 후반 2분엔 손흥민의 낮은 크로스에 이은 쿨루세브스키의 추가골이 나오면서 승기를 잡은 토트넘은 연장 후반 13분 존슨이 쐐기골을 넣으면서 3-0 승리를 거뒀다,
스코어는 완승이었지만 개운치 않은 완승이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