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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승강제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는 10개 팀이 팀당 144경기를 치르는 페넌트레이스를 벌인다. 그 다음은 이른바 ‘가을야구’다. 페넌트레이스 4-5위가 맞붙는 준플레이오프, 그 경기 승자와 3위가 만나는 플레이오프(PO)에서 이긴 팀이 1위가 기다리고 있는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에 진출한다.
올해 K1은 울산 HD, K2는 FC 안양 우승
프로축구 K리그는 ‘가을축구’가 없다. K리그1(12팀)은 팀당 38경기, K리그2(13팀)는 36경기씩을 치러 승점이 가장 높은 팀이 우승한다. 올해 K리그1은 울산 HD가 우승했다. 시즌 중간 홍명보 감독이 A대표팀으로 갔지만, 후임 김판곤 감독이 팀을 잘 추슬러 3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K리그2에서는 FC 안양이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프로축구는 시즌이 끝나면 피 말리는 승강제 시스템이 작동한다. K1 최하위 팀은 K2로 강등된다. 지난해 명문 클럽 수원 삼성에 이어 올해는 ‘생존왕’이라 불리던 인천 유나이티드가 강등됐다. K2 1위는 K1으로 승격한다. 올해 안양이 영광을 안았다.
승강 PO 첫 경기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 28일 1차전에서 K2 아산이 K1 대구를 4-3으로 꺾었다. 아산은 12월 1일 2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창단 후 처음으로 K1에 올라간다. 반면 대구는 강등의 날벼락을 맞지 않으려면 2차전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K1과 K2는 관중 수, 입장권 수입, 후원사와 후원 액수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해당 구단이 있는 지역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까닭에 기업 구단이 아닌 시·도민 축구단의 구단주인 지자체장들은 승강제에 매우 민감하다.
FC 안양 구단주인 최대호 안양시장은 축구에 진심이다. 홈 경기 때는 빠짐없이 경기장을 지킨다. 2022년 수원 삼성과의 승강전에서 경기 막판 결승골을 얻어맞고 승격이 좌절되자 응원단과 함께 펑펑 울었을 정도다.
최 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축구는 투자 대비 가성비가 높다. 축구를 통해서 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시민의 자존감도 커진다. 앞으로는 프로축구 팀이 있는 도시와 없는 도시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생길 것이다”고 말했다.
유럽 축구리그는 대부분 승강제 채택
원래 안양에는 안양 LG라는 연고 팀이 있었는데 2004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해 FC 서울로 이름을 바꿨다. 안양 축구팬들은 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이 에너지가 모여 시민구단인 FC 안양이 탄생했다. “언젠가 K1으로 승격해 우리를 버린 팀에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았다. 내년부터 안양의 ‘리벤지 매치’가 현실이 된다.
창단 21년 만에 처음 K2로 강등된 인천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구단주인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 25일 인천시청에서 직접 마이크를 들고 “K1 복귀와 구단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천 유나이티드 비상(飛上)혁신위원회를 가동하겠다”며 구단의 혁신 방안을 설명했다. 운동생리학 분야 권위자인 최대혁 서강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은 혁신위는 선수단 전력 분석과 정밀 진단, 구체적인 선수단 전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구단 임시대표로 스포츠마케팅 전문가인 심찬구 전 스포티즌 대표를 영입했다.
문제는 한번 강등되면 좀처럼 다시 승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K2 강등을 경험한 구단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K2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늪 같은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구단주로 있는 부산 아이파크는 2021년 두 번째 강등 후 4년째 승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K리그 7회 우승(통산 2위) 기록을 갖고 있는 성남 FC도 지난해 강등됐고, 올 시즌은 최하위로 처졌다.
승강제는 ‘감독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승격과 강등의 위태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받는 감독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압박으로 인해 두 명의 전도유망한 지도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2017년 10월, K2에서 경남과 승격 경쟁을 하던 부산 아이파크 조준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숨졌다. 2019년 강등 위기에 처한 인천 유나이티드를 맡았던 유상철 감독은 췌장암과 싸우면서도 팀의 K1 잔류를 이끌었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유럽 축구리그는 대부분 승강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도 승강제를 도입했다. 어떤 이는 승격의 기쁨에 울고, 다른 이는 강등의 아픔을 안고 눈물을 흘린다. 승강제 승부는 냉혹하고 비정하지만, 승강제에서 만들어지는 풍성한 스토리와 프로 구단들의 치열한 경쟁은 리그의 질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