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김아인]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 통산 419경기 165골을 넣은 리빙 레전드다. 그러나 토트넘은 손흥민과 아시아인들을 향해 인종차별 발언을 하고 징계를 받은 팀 동료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항소를 결정했고,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도 벤탄쿠르를 응원했다.
토트넘은 20일(이하 한국시간) 공식 채널을 통해 "구단은 이번 주 초에 확정된 벤탄쿠르의 출전 금지 징계 기간에 항소를 했다. 우리는 독립 규제 위원회에 의한 벤탄쿠르의 혐의를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제재 조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벤탄쿠르는 항소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 대회에서 뛰지 못하는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이 기간 동안 클럽은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벤탄쿠르는 지난 6월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우루과이 TV 매체 '포르 라 카미세타'에 출연했다. 함께 출연한 진행자가 한국 선수의 유니폼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벤탄쿠르는 "쏘니(손흥민)?"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쏘니의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주면 어떤가. 모두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라는 농담을 하면서 진행자와 함께 웃었다.
손흥민과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에 해당했다. 아시아인의 생김새가 모두 비슷하다는 말은 동양인에 대한 흔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꼽힌다. 이후 해당 발언은 일파만파 커졌다. 영국 'BBC'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벤탄쿠르의 인종차별 발언을 조명했고, 영국 '타임스'는 벤탄쿠르의 발언이 FA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벤탄쿠르는 논란 직후 개인 SNS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나의 형제 쏘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사과할게. 그건 아주 나쁜 농담이었어.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을 너도 알다시피 나는 결코 널 무시하거나, 다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거야. 사랑해 브로"라고 적었다.
그러나 24시간이 지나고 사라지는 형태의 게시물이었기 때문에 축구 팬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손흥민이 약 5일이 지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벤탄쿠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실수를 했다. 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사과도 했다. 그는 결코 의도적으로 그런 공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형제이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이다. 우리는 프리 시즌 때 팀을 위해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다"고 벤탄쿠르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전했다.
토트넘도 공식 채널을 통해 입을 열었지만, 별다른 징계 없이 인종차별에 관련한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벤탄쿠르는 재차 사과문을 게시했고,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프리시즌 기간 벤탄쿠르에 관한 질문에 이미 끝난 일이며, 손흥민의 입장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 말을 아꼈다.
지난 9월 벤탄쿠르에게 공식 기소가 결정됐고, 최근 징계가 확정됐다. 영국 '디 애슬레틱'은 18일 "FA는 벤탄쿠르가 팀 동료 손흥민을 향해 했던 발언으로 7경기 출전이 금지됐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상세한 징계 수위도 알려졌다. '디 애슬레틱'은 "FA가 지정한 규칙 E3.1은 선수가 '모욕적인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E3.2 규정에 정의된 '중대한 위반'에 '인종, 피부색, 인종, 국적'이 담긴 발언이 포함된다. 3명으로 구성된 규제위원회는 지난 12일 회의를 열어 벤탄쿠르가 규칙 E3.1을 위반했으며 가중 위반이라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벤탄쿠르를 국내 7경기 출전 금지, 10만 파운드(약 1억 7600만 원)의 벌금과 대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벤탄쿠르는 7경기 출장 금지와 더불어 벌금까지 물어내게 됐다.
벤탄쿠르는 기소에 대해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트넘 소식에 정통한 알레스데어 골드 기자는 벤탄쿠르가 FA에 제출한 답변을 공개했다. 그는 방송에 함께 출연한 진행자가 문제가 됐던 손흥민을 '한국인'이라고 표현한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진행자가 그런 용어를 사용한 것에 '놀랐고 불편했다'고 주장했다.
토트넘이 벤탄쿠르를 대신해 보낸 의견서에는 "벤탄쿠르는 진행자가 완전히 부적절한 일반화를 사용한 것에 대해 가볍고 농담 섞인 태도로 꾸짖기 위한 의도였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한국인이라 부른 것을 돌려 말하면서 부드럽게 꾸짖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 벤탄쿠르와 진행자의 대화가 자택에서 사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와 해당 언론사가 내용을 잘 편집해 방송할 것으로 합리적인 기대를 가졌다고 전했다. 벤탄쿠르는 자신이 편집 권한이 없으며 매체에서 이러한 발언을 그대로 내보내기로 한 결정에 대해 놀랐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도 FA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인종차별 발언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징계를 결정했다.
토트넘이 항소를 결정하면서 영국 매체가 토트넘을 비판했다. '디 애슬레틱'은 21일 "이 항소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출전 금지가 한 경기 줄어드는 것이다. 구단은 지난 9월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벤탄쿠르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징계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과 상반되는 방식으로 불쾌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입을 열었다. 토트넘이 항소해봤자 사실상 6경기나 7경기나 큰 차이가 없는 셈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벤탄쿠르의 발언은 SNS에 작성된 게 아니라 TV 인터뷰로 나온 거다. 벤탄쿠르는 더 엄격한 기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엔조의 경우 코파 아메리카 기간 발생한 일이기에 FA 소관이 아닌 남미축구연맹 관할에 속한다. 벤탄쿠르는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여전히 잉글랜드에서 뛰는 선수로 간주되므로 FA의 조사 의무에 해당한다"고 징계가 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FA가 그간 인종차별에 대해 일관성 없는 징계를 내렸다는 근거가 토트넘의 결정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첼시의 엔조 페르난데스가 아르헨티나 동료들과 프랑스 선수들을 인종차별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구단 내부적으로 벌금 징계를 내린 것 외에는 FA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또한 SNS 댓글로 인종차별을 했다가 지난 2020년에는 에딘손 카바니가 3경기 출전 금지, 2019년엔 베르나르두 실바가 1경기 금지를 받은 바 있다.
계속해서 매체는 "토트넘의 행동은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벤탄쿠르가 내부적인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어떤 공개 언급도 없었다. 이브 비수마는 지난 8월 웃음 가스 흡입 영상을 게시했다가 구단으로부터 한 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그의 행동은 어리석었지만 벤탄쿠르의 말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거다"고 토트넘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했다.
그럼에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벤탄쿠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벤탄쿠르는 올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결정이 실망스럽다. 그는 축구에서 한 단계 레벨업 한 사람 중 하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가 어떤 종류의 징계든 수용하기로 했다. 클럽이 벤탄쿠르에 대해 항소하기로 한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몇 경기 동안 그가 출전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벤탄쿠르와 함께하며, 그가 다시 나설 수 있을 때 최고의 상태가 되도록 적절하게 지원할 것이다"고 벤탄쿠르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