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포투=김아인]
영국 매체가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징계에 대한 토트넘 홋스퍼의 항소를 비판했다.
토트넘은 최근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가 받은 7경기 출전 금지 징계에 대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토트넘은 20일(이하 한국시간) 공식 채널을 통해 "구단은 이번 주 초에 확정된 벤탄쿠르의 출전 금지 징계 기간에 항소를 했다. 우리는 독립 규제 위원회에 의한 벤탄쿠르의 혐의를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제재 조치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벤탄쿠르는 항소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 대회에서 뛰지 못하는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이 기간 동안 클럽은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앞서 벤탄쿠르는 지난 6월 우루과이 방송 매체에서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가 잉글랜드 축구협회(FA)로부터 기소가 결정됐고, 징계가 확정됐다. 벤탄쿠르는 국내 7경기 출전 금지, 10만 파운드(약 1억 7600만 원)의 벌금과 대면 교육 프로그램 이수 등의 처분을 받았다.
토트넘에는 벤탄쿠르의 징계가 악재다. 유럽대항전 출전은 가능하기에 유로파리그 일정은 소화할 수 있지만, 프리미어리그(PL)와 잉글랜드 풋볼리그컵(EFL컵) 경기는 출전할 수 없다. 당장 맨체스터 시티를 시작으로 풀럼, 본머스, 첼시를 차례로 만나고 사우샘프턴, 리버풀, 노팅엄 포레스트도 기다린다. 토트넘은 현재 5승 1무 5패로 리그 10위에 그쳐 있어 확실한 반등이 필요하지만 핵심 자원 벤탄쿠르의 출전 금지는 구단이나 손흥민에게나 좋은 일은 아니다.
이에 토트넘은 벤탄쿠르가 징계를 받는 판결은 수긍하지만, 그 수위가 7경기나 출전 금지라는 것은 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토트넘이 항소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다. 토트넘 소식에 능통한 알레스데어 골드 기자는 "토트넘은 출전 금지 기간에 대해 항소하지만, 최소 금지 경기가 6경기이기 때문에 1경기 이상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뤄져도 벤탄쿠르는 리버풀전 이후 출전이 가능할 것이다"고 전했다.
영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토트넘의 항소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매체는 21일 "이 항소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출전 금지가 한 경기 줄어드는 것이다. 구단은 지난 9월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벤탄쿠르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징계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과 상반되는 방식으로 불쾌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입을 열었다. 토트넘이 항소해봤자 사실상 6경기나 7경기나 큰 차이가 없는 셈을 지적한 것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생각과 구단의 입장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지난 9월 벤탄쿠르의 기소가 확정되면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손흥민과 벤탄쿠르는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고, 둘 모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했다. 벤탄쿠르는 이미 자신의 말에 대해 사과했고 손흥민도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우리는 인간으로서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늘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 실수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처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속죄하고 배우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관용적인 사회를 만든다면 벤탄쿠르가 이번에 저지른 실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걸 보여줘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로부터 배우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던졌다.
매체는 또한 손흥민과 절친한 팀 동료이자 베테랑 벤 데이비스의 언급도 전했다. 데이비스는 "한 팀으로서 우리는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넘어가기로 했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는 지금처럼 그만큼의 심각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와 팀의 입장에서는 마무리된 일이었지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소신 발언을 전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과 데이비스 모두 벤탄쿠르가 손흥민과 이야기를 마쳤기에 마무리된 일이라고 보면서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토트넘은 벤탄쿠르가 7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받는 게 과하다고 판단하고 항소를 결정했다.
FA가 그간 인종차별에 대해 일관성 없는 징계를 내렸다는 근거가 토트넘의 결정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여름 첼시의 엔조 페르난데스가 아르헨티나 동료들과 프랑스 선수들을 인종차별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구단 내부적으로 벌금 징계를 내린 것 외에는 FA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또한 SNS 댓글로 인종차별을 했다가 지난 2020년에는 에딘손 카바니가 3경기 출전 금지, 2019년엔 베르나르두 실바가 1경기 금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디 애슬레틱'은 "벤탄쿠르의 발언은 SNS에 작성된 게 아니라 TV 인터뷰로 나온 거다. 벤탄쿠르는 더 엄격한 기준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엔조의 경우 코파 아메리카 기간 발생한 일이기에 FA 소관이 아닌 남미축구연맹 관할에 속한다. 벤탄쿠르는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여전히 잉글랜드에서 뛰는 선수로 간주되므로 FA의 조사 의무에 해당한다"고 징계가 과하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계속해서 매체는 "토트넘의 행동은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벤탄쿠르가 내부적인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어떤 공개 언급도 없었다. 이브 비수마는 지난 8월 웃음 가스 흡입 영상을 게시했다가 구단으로부터 한 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받았다. 그의 행동은 어리석었지만 벤탄쿠르의 말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거다"고 토트넘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했다.
여기에 벤탄쿠르가 자신이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입장문에도 진정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벤탄쿠르가 FA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그는 방송에 함께 출연한 진행자가 문제가 됐던 손흥민을 '한국인'이라고 표현한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진행자가 그런 용어를 사용한 것에 '놀랐고 불편했다'고 표현했다.
토트넘이 벤탄쿠르를 대신해 보낸 의견서에는 "벤탄쿠르는 진행자가 완전히 부적절한 일반화를 사용한 것에 대해 가볍고 농담 섞인 태도로 꾸짖기 위한 의도였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벤탄쿠르가 손흥민을 한국인이라 부른 것을 돌려 말하면서 부드럽게 꾸짖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벤탄쿠르 자신이 인종차별을 한 게 아니라 상대 진행자의 태도를 지적하기 위해 돌려 말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이었다.
결론적으로 매체는 토트넘과 벤탄쿠르의 행동으로 토트넘 팬층 일부가 소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2014년부터 토트넘 유니폼 스폰서인 아시아에 본사가 있는 AIA 조사에 따르면 토트넘은 한국 인구의 4분의 1 가까이 되는 1200만 명의 한국인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벤탄쿠르가 기소된 9월 매체와 만난 토트넘 아시아 팬들이 분노했다고 말한 인터뷰를 전했다.
또한 "영국 인권 단체인 '킥 잇 아웃'에 따르면, 2023-24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에 1,332건의 학대 관련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이는 이전 시즌보다 33.2% 증가한 수치다. 인종 차별과 관련된 신고는 731건(54%)이며, 이 수치의 3분의 1은 동아시아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에 관한 것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토트넘의 조치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고 말했다.